앞으로 무엇이, 나의 어떤 부분들이 달라질까?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는지. 다가오는 새로운 국면 앞에서 나는 역시나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재미있고 안타깝게도 이런 일엔 매번 면역이 없다. 여름과 가을의 모호한 경계에서 쓴다

일을 한다

사람들이 일을 한다. 넓디 넓은 사무실 안, 내가 앉은 자리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두고서 나와 같은 책상 위에 비슷한 물건들의 배치를 한 사람들이 개미처럼 밤낮없이 일을 한다. 재미있고 서글픈 부분은, 그들은 자신들이 함께 탄 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정확히 모르는 것 같다는 점이다. 목적지를 알지 못한 채 노를 젓고 있는 것이다. 타의에 의해 움직이는 손, 타의에 의해 저어지는 노. 이는 잔물결은 그들을 어디로 데려갈까. 어정쩡한 갑판 위로 부는 바람에서 정치라는 이름의 지린내가 난다.

영화 속의 작은 에피소드조차 되지 못할 이 지리멸렬한 일상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어쩌면 다 그렇고 그렇게 사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면 문제될 것은 정말로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그렇고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문제인 것이다. 다시 조종간을 움켜쥐고 키를 돌리고 싶어진다.

where to go, where to go, where to go

타고난 이야기꾼

타고나기를 세상에 할 말이 많으며 그걸 남다르게 풀어내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논리와 흐름의 단절 없이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 나아가 공감을 주는 것. 스스로만 알아봄직한 지나친 자의식의 나열은 독. 대중성과 작품성이 반드시 반비례하는 것은 아니나 그렇게 취급되는 경향도 없잖아 있는 듯 하다.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나 글을 쓰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어쩌면 ‘잊어버렸’다기보다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글을 써서 먹고사는 일은 앞으로도 그저 가슴 한 켠의 꿈으로만 남겨질까?

정말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님, 그냥 인정하기 싫어 부정하는 건가.

goodbye summer

열대야가 걷힌 오늘밤 위로 가을바람이 드리운다.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나기란 원래부터 어려운 거였다. 그리고 ‘잘 맞는’이라는 말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범주의 것을 포괄하는 언어였다. 한 해 한 해 더해가는 삶은 내게 새롭고 좋은 인연을 보내주는 것보다는 기존의 좋은 인연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식으로 나를, 더욱 폐쇄적인 인간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다뤄갔다.

글을 쓴 지가 오래되었다

문장의 맛을 본 지가 오래되었다. 문득 그리워졌다. 단어와 어절이 합쳐져 하나의 문장을 이루고, 그 문장이 내 안으로 와 닿아 속을 찌르르ㅡ 울리는 느낌이.

정적을 가르는 선풍기 바람만으로도 행복한 여름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당분간 안정적일 예정이다.

내가 찾은 본질은 소통. 그 가시적 답은 커뮤니티와 플랫폼이다. 어떤 철학이 더 필요할까. 어떤 혜안을 더 길러야 할까. 어떤 직관을 더 훈련해야 할까.

나는 지금 어디쯤에 있는 걸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하나의 큰 팀을 책임지는 팀장이라는 위치는 어떤 걸까. 어떤 기분과 마인드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걸까.

궁금한 게 참 많기도 많다. 젠장. 비나 잔뜩 와라. 그리고 월요일 출근 땐 언제 그랬냐는 듯 변덕스럽게 그쳐라.